궁중다례의식 김의정

궁중다례의식 김의정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7호 궁중다례의식

다례란 사람 또는 신불(神佛)에게 차를 달여 바치는 예의 범절로서,궁중다례를 비록하여 유가,불가,도가의 다례가 있다.

명(茗) 또는 천(荈)이라고도 쓴 차(茶)는 언제부터 음료로 마시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삼국사기>에 "차는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다.'라고 한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7세기에는 차를 마셨음을 알 수 있다.또 흥덕왕 3년(828)에 "중국 종의 차나무 씨를 들여와 지리산에 심어 늘어나는 수요에 충당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삼국유사>가라국기조에서 "661년 신라 문무왕 때 가야의 종묘에 시절제사인 다례를 지내는 음식으로서 떡,과일 등과 함께 차가 놓여졌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기호음료로 마셨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왕실의 다례는 태후나 태자의 책봉,원자의 탄생 축하, 태자의 생일 축하 의례 때에 차를 올렸으며,공주가 시집갈 때도 차를 베푼 기록이<고려사>에 보인다.

조선시대 조정과 왕실의 다례는 <會講茶禮>,사신맞이 다례,왕실의 다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화강이란 왕세자가 스승과 시강원의 정 1품 관리와 빈객을 모아 놓고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강론하던 일로서,이때 다례를 행한 기록이 <세종실록>에 보인다. 사신맞이다례는 태평관,사정전,인정전,명륜당 등에서 왕이나 왕자가 중국 사신에게 차를 대접하는 의례를 행한 것으로서 고종 때까지 번번히 행해졌다.

보유자 김의정의 사신 접빈다례 절차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임금의 의자는 서벽(西壁)에 동향하여 설치하고,사신의 의자는 동벽(東壁)에 서향하여 설치하며,향안(香案)은 북벽에 설치한다.임금과 사신이 읍(揖)을 한 다음 자리에 앉는다.사준제거(司罇提擧)1인은 다병(茶甁)을 받들고,1인은 다종(茶鍾),찻잔의 쟁반을 받들고 들어와 서쪽에 선다.사옹제거(司饔提擧)2인은 과실 쟁반을 받드는데 1인은 정사(正使)오른쪽에 남향하여 서고,1인은 부사(副使)왼쪽에 북향하여 선다.

제조가 과실 쟁반을 받들고 임금의 오른쪽에 북향으로 서고,사준제거가 찻잔으로 차를 받아 제거가 차를 따른 후 꿇어앉아 임금에게 올리면,임금은 의자에서 일어나 조금 앞으로 나와서 서고,사신도 의자에서 일어나 조금 앞으로 나와서 서고, 사신도 의자에서 일어나 조금 앞으로 나와 선다. 임금이 찻잔을 받아 정사 앞으로 나아가서 차를 건넨다. 정사가 종을 받아 임시로 통사(通事)에게 준다. 제조가 또 찻잔으로 차를 받아 부사 앞에 나아가 차를 건넨다.부사가 찻잔을 받으면 조금 물러나고 제조가 도 찻잔으로 차를 받아 정사에게 올리면 정사가 찻잔을 쥐고 임금에게 나아가 차를 올린다. 이때 제조가 서쪽으로 물러나 북향하여 꿇어앉는다.임금이 찻잔을 쥐면 통사가 찻잔을 정사에게 올리고 임금은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신다. 제조느 임금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어앉아 차잔을 받아 차쟁반에 두고 나간다. 사옹제거는 서서 사신에게 과일을 올리고,제조는 꿇어앉아 임금에게 과실을 올린다. 마치면 쟁반을 가지고 나간다.

궁중다례에 사용하는 도구는 湯罐(찻물 끓이는 주전자),茶罐(찻주전자),찻잔,잔받침,熟盂(물을 식힐 때 쓰는 그릇),찻숟가락,차항아리,차수건,차병,퇴수기(찻주전자나 찻잔을 쓴 물을 버리는 그릇)등이 있다.2001년 12월 20일에 김의정이 보유자로 인정받아 활동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