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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m. Ik-Pyung)




  옥의 유래 옥의 성분 및 색상 우리나라의 옥산지 기구 및 공구


중국 후한의 자서인 설문 해자에는 옥(玉)자를 ‘아름다운 돌’ (石之美者)라고 하였다.
아름다운 돌이라고 하면 비단 옥뿐만 아니라 비취, 마노, 수정, 홍보석, 남보석, 청금석, 동석(凍石), 규청석(珪靑石), 송석(松石), 에메랄드, 터키석, 공작석, 다이아몬드, 루비 등까지를 일컫는 광의(廣義)의 ‘아름다운 돌’ 일테고 협의(狹義)로는 광물학적으로 백옥으로 대표되는 연옥(軟玉. Nephrite)과 비취로 대표되는 경옥(硬玉)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연옥은 신석기 시대부터 돌도끼, 팔찌, 목걸이 등 실용품뿐만 아니라 중국 강남지방의 양저(良渚)문화에서는 의식적 상징으로서의 정미(精美)한 종(琮. 자신을 제사지낼 때 쓰는 제기), 벽(壁. 둥근 옥), 원(瑗. 구멍 큰 옥)등의 옥기가 사용되었으며 주대(周代)로 내려오면 용도에 따라 의례용의 서옥(瑞玉)과 제사용의 제옥(祭玉)이 만들어졌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용이나 봉황을 선각이나 투각으로 표현하는 절탁기술이 발달했다.
한대의 장옥(葬玉)발달을 거쳐 육조(六朝)-수당시대의 불교조각인 백옥불(白玉佛)도 광의의 옥기로 볼 수 있다. 명청시대의 옥기는 갖가지 색채의 재질이 사용되어 궁정이나 대가(大家)에서 사용된 향로나 서재의 문방구로 만들어 졌으며 청 건륭 연간에 최고조로 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선사시대부터 옥이 장식품으로 사용되었는데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관옥(管玉)이 그 한 예이다. 부여군 초촌면 송국리에서 출토된 관옥은 길이가 0.9cm 에서 3.3cm에 이르는 옥 대롱을 끈으로 이은 것이다. 그리고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옥구슬과 목걸이, 보물 634호로 지정되어 있는 상감옥 목걸이는 경주 미추왕릉 C지구 3호분에 출토된 것인데 5-6세기 신라의 옥제품이다. 같은 무렵의 신라 옥제품으로는 금관총에서 나온 곡옥(曲玉)과 목걸이를 들 수 있다.

이렇듯 옥은 선사시대부터 권위의 상징으로, 또 아름다움을 치장하는 장식품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옥이 영성(靈性)을 지녔다는 관념은 선사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옥이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벽사의 힘과군자의 덕인 인의예지충신을 나타내므로 예부터 군자는 반드시 옥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군자필패옥 이라느니 군자무고옥불거신 이라는 말이 전해오는 것이다.




옥의 성분
연옥에 속하는 백옥은 섬유상, 장주상과 모전상의 투섬석 광물의 집합체로 이루어져 있다.
색상과 광택은 부드럽고 온윤한 느낌을 주며 은은한 광채가 있고 깨끗해서 고아한 군자를 연상케 한다.
연옥은 각섬석, 투섬석, 양기석과 질적으로 같은 계열의 광물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담록색을 띤다.
경옥은 휘석 계통의 나트륨~알미늄계인 규산염의 광물질이다. 순수한 화합물인 경우에는 흰 경옥이 형성되지만 불순물인 산화제2철이 함유된 성분이 생산되어 여러가지 색상을 띠게 된다.

연옥과 경옥은 일정한 규칙에 의하여 결합되어 있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합성되어 있는 까닭에 쪼아서 조각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갈아서 기물을 만들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옥 다루는 일을 새길 각이라 하지 않고 옥 다듬을 이라 하는 까닭은 그러한 옥의 성질 때문이다. 옥은 점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터럭 같은 세밀한 조각이 가능한 것이다.

옥의 색상
옥의 색상은 품질을 가늠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값어치가 결정되는 기준이기도 하다.
조선조 영조에서 헌종대에 걸쳐(1764~1845) 살았던 학자 서유구의 저서인 임원십육지의 고옥기(古玉器)조에 보면 옥빛은 황색이 첫째요, 양지(羊脂)가 다음인데 노랑색의 중색도 얻기 어렵다. 요즘 사람은 백옥을 귀하게 여기고 황옥을 천하게 여기나 삶은 밤처럼 노란 감황(甘黃)이 좋고 초황(焦黃)은 그 다음이라 적고 있다. 그런데 임원십육지의 이 대목은 명나라때 고렴이 지은 ‘준생팔전’의 논고옥기조(論古玉器)조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청나라때 당병균이 엮은 ‘문방사고도설’의 옥분오색(玉分五色)조에는 중국옥 산출의 본산인 서역 우전옥을 들어 이렇게 적고 있다.
무릇 옥기는 백색이 첫째요, 황색과 푸른 벽(碧)색이 그 다음인데 백옥은 그 빛깔이 타락(우유의 별칭)빛이 가장 귀하고 반탕(飯湯)빛, 곧 냉색(冷色)이나 기름빛깔(油色), 설화(雪花)가 있는 것은 그 다음이다.
피처럼 붉은 이른바 시체의 핏기가 스며든(부장품의 경우) 혈옥(血玉) 또한 아주 귀한 것이다.

벽옥은 그 빛깔이 아주 짙푸른 쪽빛 염료 같은 것이 좋고 색이 엷은 것은 그 다음이요 흑옥은 그 빛깔이 옻처럼 검고, 서촉에서 나는 홍옥은 닭볏처럼 붉은 것이 좋고 녹옥은 솔잎 같은 심록(深錄)색이 좋은데 그 가운데 밥알 같은 것이 섞여 있는 게 가장 좋다고 적고 있다.
옥빛깔에 관하여는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견해가 다양한데 백옥의 빛깔은 대체로 양지옥, 곧 양의 비계를 잘라놓은 것 같은 양지옥(羊脂玉)을 상품으로 치는게 중론인 것 같다.

옥은 오랫동안(수백년 혹은 수천년) 땅속에 묻혀 있다가 출토된 토옥(土玉)과 대대로 사람손에 다루어져 내려온 전세옥(傳世玉)으로 대별된다.
토옥, 곧 출토옥의 경우 대개는 부장품으로서 시체와 함께 묻혔다가 수백년 수천년 만에 출토되는 것이므로 피나, 흙, 또는 광물질의 침노로 빛깔이 변하기 마련이다.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 보면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기간에 옥이 산출되었음이 확실한 것 같으나 기록된 문헌은 찾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 옥 산출이 공식적으로 밝혀지기는 세종14년의 기록에 벽동군 사람으로부터 청옥광산을 신고 받고 장영실을 현지에 파견하여 옥을 채굴한 다음 믓 사람이 옥을 파가지 못하도록 한 대목이 보인다. 벽동은 평안북도에 있는데 조선 태종 3년에 군(郡)을 만들고 세조때 진(鎭)을 두었던 곳이다.

장영실은 물시계인 자격루와 측우기 등을 만든 당대의 과학자이다. 또 성종실록(성종 2년 4월조)에 의하면 성종 13년에 강원도 평창군 남면 30리 허에 옥을 닮은 돌이 발견되었으나 채취를 금했다. 영조와 정조시대의 재표적인 실학자인 성해응의 저서인 연경제전집에 보면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나라의 옥은 남양, 성천, 단천 등지에서 나는데 그것들은 옥질이 낮은 무부류이다. 성종말에 옥공 김효련 등이 백옥 4장을 진상했는데 그 백옥은 과천현의 관악 서쪽에서 얻었다. 상명으로 본읍과 통진현에서 늘 채옥했는데 갓 장식은 금했다.’ 이런 여러 기록들로 보면 우리 나라 전국 각지에서 옥이 산출되었으나 대게는 질이 떨어지는 ‘무부’등속인 것 같다.

현재 양질의 백옥을 산출하고 있는 춘천의 옥광산은 그 주변의 출토물로 마루오 보면 옛날에도 백옥이 채취되긴 했으나 극히 일부부만 채굴된 것으로 보인다.

또 ‘천공개물’에 보면 조선의 서북에 있는 태위산에 천년박이 있는데 그 소에 상질의 옥이 들어있고 그것은 곤륜산 화전의 양지옥에 뒤지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박’은 거죽돌에 싸인 옥덩어리(원석)를 말한다. 그러나 태위산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어 그 진위를 가릴 수 없다. 다만 우리나라에 양질의 옥이 묻혀 있다는 한 시사로 보면 될 것 같다.


 
발비비개(목기틀의 원용)
상판에 회전축을 고정시키고 가죽끈을 2번 감아 아래에 있는 발판에 연결해 서로 엇갈리게 밟으면 회전축이 좌,우 양쪽으로 회전한다.
회전축의 높이를 조절할 수 있고 회전축에 여러가지 연결 공구를 끼운 다음 쐐기를 박아 고정시켜 사용한다.
물항아리를 맨 위에 올려놓고 연마제(금강사:규화탄소)를 물에 흘려 내려보내면서 여러가지 연결 공구를 사용하여 옥을 마찰시키면 파거나, 깎거나, 광내기 등 여러가지 용도의 작업을 할 수 있다.
발굴림틀(재봉기의 회전원리 원용)
상판위에 회전축을 고정시키고 두 발로 발판의 앞뒤를 밟으면 큰 바퀴가 돌면서 끈으로 연결된 작은 회전축이 같은 방향으로 빨리 돌아간다. 크고 작은 연결공구를 손쉽게 마꾸어 낄 수 있어 작업의 능률을 향상시키고 편리하다.

     
구멍뚷기 틀
주전자와 같이 기물의 속을 파 낼때 구멍을 뚫는 기구이다. 큰바퀴와 작은 회전축을 연결하여 큰 바퀴를 한번 돌리면 작은 회전축이 빨리 회전하므로 혼자서 밀고 당기면서 손쉽게 작업을 할 수 있다.
 
옥물레
실을 잦는 물레에 회전축을 고정시켜 큰 물레를 회전시키면 작은 회전축이 여러 번 회전하므로 미세한 부분을 각할 때 편리하다. 작은 회전축에는 여러가지 연결 공구를 바꾸어 끼워 쓸 수 있다.
 
실물레
실물레에 꼬은 명주실에 연마제를 묻혀 감아 올리면 옥에 조금씩 흠집이 나면서 미세하게 갈린다. 당목태 톱보다는 효율성이 떨어지나 힘이 덜 드는 장점이 있다.
 
조임틀
작은 당목태 톱으로 혼자서 절단 작업을 할때에 원석이나 옥판을 넣고 쐐기를 박아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키는 기구이다. 연마제를 숟가락으로 퍼부으면서 자르지만 오랜 시간 자를 때는 위에서 물과 함께 연마제가 흘러 내리게 한다.

     
수평조임틀
비녀나 가락지처럼 작은 기물을 수평으로 물려 놓고 작업을 할때 쓰는 기구이다.
 
물림틀
기물을 고정시키고 구멍을 뚫을 때 쓰는 기구이다.
 
갈틀
주물로 된 반듯한 쇠붙이를 끼워 놓고 면을 갈 때 쓰는 기구로 묽은 연마제를 흘려가며 작업한다.
 
투각틀
향낭, 옥판,가락지 따위의 속을 밑그림대로 구멍을 뚫고 철사톱으로 자를때 물림역할을 하는 틀이다.

     
돌이대
가로지른 쇠목의 중간에 구멍을 뚫고 희전축을 끼워 가죽끈을 감아 쇠목의 양끝에 연결하여 놓았다. 쇠목에 힘을 주어 위아래로 움직이면 회전축이 좌, 우로 돌면서 구멍을 뚫는다. 활비비 보다 쉽지 않다.
 
활비비
반달모양으로 둥글게 휜 활의 양끝에 질긴 끈을 연결하고 회전축을 감아 앞뒤로 밀고 당기면서 회전시켜 구멍을 뚫는다.
 
큰 당목태 탕개톱
긴 당목태의 양긑에 구멍을 뚫어 톱틀을 걸고 탕개를 돌려 톱양을 팽팽하게 하며 두 사람이 밀고 당기면서 사용한다. 큰 원석을 자를 때 묽은 연마제(60번)을 넣어가며 자른다.
 
작은 당목태 톱
적당한 크기의 원석을 조임틀 위에 물려 놓고 혼자서 묽은 연마제를 부으면서 작업하는 톱이다.

     
철사톱
구멍을 뚫는 옥판이나 향낭 따위의 문양을 오려내며 주로 투각할 때 쓰는 작은 톱이다.
 
발비비 공구
발비비에 사용되는 여러가지 용도의 연결 공구
 
송곳
경도가 낮은 옥석에 훔집을 내거나 각을 할때 긁어내는 데 쓰는 송곳이다.

 
각종 연장
망치, 정, 줄, 송곳 등
 
발 굴림틀 공구
발굴림틀에 사용되는 여러가지 용도의 연결공구

   
옥물레 공구
옥물레에 사용되는 여러가지 용도의 연결공구
 
연마공구
지석, 주지석, 탄화규소 등 발굴림틀에 주로 사용된다.
 
구멍뚫기 공구
철판을 3-4쪽으로 오려서 여러가지 지름의 크기로 두들겨 붙여 뚫거나 속을 파낼때 쓰는 공구

   
광택제
산화크롬(구리를 습도가 많은 곳에 두거나 썩은 오줌을 묻히면 녹이 쓰는데 이것이 산화크롬이다)
갑오징어뼈
 
청탄화규소
연마석의 일종인데 필요할때 잘라서 사용한다.
* 탄화규소:
옥을 가공하기 위해서는 금강사(탄화규소)연마제를 사용한다. 때로는 탄화규소로 작은 공구를 만들어 쓰기도 한다, 30번에서 1500번까지 있다.
 
송진가루
송진가루는 공구를 고착시키는데 사용된다. 낮은 열에 쉽게 녹기 때문에 사용이 쉽다.

기타 : 주물쇠, 가죽끈, 철사, 명주실, 노끈, 연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