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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 Hwan-Kyung ) 



  채화칠기의 역사 칠기의 종류 및 문양


칠기(漆器)는 옻나무에서 채취된 수지인 (漆) 혹은 옻칠을 나무재료를 비롯하여 흙, 돌, 금속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조형물 및 공예품 표면을 보호하기 위해 칠한 것이다. 옻칠제품은 서양에서는 발달하지 못한 동양 특유의 공예품으로, 옻칠에 광물성 안료를 배합한 것이 채화칠기(彩畵漆器)이다.
따라서 통일신라시대까지는 정제칠, 채색칠, 건칠이 주로 쓰여졌으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나전칠기가 우세하여 순옻칠 제품이 많지 않으나, 그 전통은 후대까지 계승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원래의 옻칠색인 암갈색을 단순히 바르기보다는 용처나 분위기에 걸맞게, 갖가지 색이나 그림을 곁들여 이용했던 것이다.
생활용구인 구절판에도,좌경이나 벼루집에도 산수의 정겨움과 해학적인 동물 모습,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으로치장하고 운치와 멋스러움을 한껏 뽐냈던 것이다.
바로 이때의 칠재료를 `채화칠'이라고 하고 이러한 칠을 이용하는 분야를 `채화칠기공예'(彩畵漆器工藝) 또는 채화칠예, 이 기법으로 완성된 공예품을 통틀어 `채화칠기'라고 부른다.
옻칠만큼 과거부터 우리 생활에 밀접했던 칠은 없었다. 옻칠 제품은 경대나 장농 같은 가구는 물론이고 밥상, 구절판, 다기와 같은 생활용구 제작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였다. 또 궁궐이나 사찰에서 형형색색의 단청이나 천장, 사천왕문 등을 그리고 칠할 때도 의당 옻칠을 썼다. 옻으로 위장병, 관절염을 치료하기도 하고 옻칠 그릇에 담아두었던 물을 소독제로 썼다는 동의보감의 기록에서 엿볼 수 있듯이 옻이 몸에 이롭다는 것을 으뜸으로 꼽았던 것따라서 옻나무 수액을채취해 도료로 사용했고, 이를 통틀어 `옻칠 공예'라고 했다.


칠기의 종류
칠기의 종류로는 백골을 나무로 한 목심칠기를 비롯하여 대나무로 한 죽심칠기와 염태칠기, 가죽에 옻칠한 칠한 칠피칠기 또는 피심칠기가 있다.
옻칠은 금속에 녹부식을 방지하기 위하여 칠한 것을 금태칠기라고 하며, 토기나 도기표면에 옻칠을 한 것을 와태칠기 또는 도태칠기, 종이를 백골로 한 지라칠기, 건칠칠기, 거북껍데기를 장식으로 칠기가 있다. 또 금박을 옻칠로 붙이는 금박칠기, 금분을 칠에 배합하여 그림을 그리는 금분화 등이 있으며, 종이로 문양을 오려붙인 지장칠기, 차랑칠기, 색옻칠로 그림문양을 그린 채화칠기 등이 있다.

칠기의 문양
옻칠기에 쓰이는 의장문양이 보이기는 백제 초기의 자료인 석촌동 고분에서 발견된 거치주칠기의 거치문을 비롯하여,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의 두침에 장식된 귀갑문과 왕비의 두침 전면의 구갑문 속의 연화인동문, 봉황, 물고기, 비천문 등의 채화문양과 왕비의 족좌면의 연화문과 공작깃무늬 등의 채화무늬가 있다.
신라지역에서 밝혀진 문양은 호우총에서 발견된 목심칠면의 모습을 비롯하여 천마총에서 출토된 칠잔에 주칠로 그린 보상당초문과 파장문대, 봉황문, 화염문 등이 보이며, 천마총에서 발견된 조형칠부에 장식된 무늬는 복선피상문, 점문과 고배에는 당초문대와 봉황문 등이 보인다.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동물문칠기편에 그려진 그림은 검은칠 바탕 위에 주칠로 소문양을 그려놓았으며, 화염문칠기편과 비조문칠기편, 거치문칠기편, 동물문칠기편에는 개와 사슴무늬 등이 그려져 있다.
조선시대
에는 쌍룡문을 비롯하여 부적무늬, 조청무늬 등의 여러 문양을 시대에 따라 특징 있는 그림으로 즐겨 쓰고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