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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Bok-gon)




  악기의 유래 재료에 따른 악기의 종류 종류에 따른 제작과정


악기장은 악기를 만드는 사람이나, 여기서는 거문고, 가야금 같은 전통악기를 제작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거문고, 가야금은 고구려, 신라에서 쓰였던 만큼 이런 현악기를 만드는 장인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가야금(伽倻琴)은 쟁(箏)의 재료와 조금 다르나 대게는 같다.”고 하였으나, 또한 가야국의 가실왕(嘉實王)이 6세기에 당나라의 악기를 보고 이것을 만들고, 우륵(于勒)에게 명하여 12곡을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4세기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의 토우에서 가야금의 인물상이 발견됨은 물론, 근래에 발견된 초기철기 시대의 광주 신창리 유적에서도 현악기로 보이는 목재편이 발견된 바 있어 이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이 땅에 현악기가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장악서(掌樂署)를 두었고 또 악기조성청(樂器造成廳)을 설치하여 악기장을 채용하였다. 이러한 명맥을 이은 강상기(康相騎)라는 장인이 있었으나 후계가 끊겼으며, 그뒤 김명칠(金明七)의 뒤를 이은 김광주(金廣胄)에 이어 현재 이영수.고흥곤으로 계승되고 있다.

문헌상으로는 현악기가 6세기부터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악기로는 일본 정찬원에 보관되어 있는 가야금이 있을 뿐 국내에는 그와 같은 시대의 악기는 없다. 정찬원에 있는 시라기고도가 정악을 연주하는 법금의 원형이다. 19세기부터 민속음악이 활발히 연주되면서 그 음악에 맞는 가야금으로 제작된 것이 현재 산조와 민요 등을 연주하는 12줄 가야금이다. 1980년대로부터 줄의 재료와 형체를 변경 17현, 18현, 21현, 22현, 25현 등의 가야금이 증장하여 다양한 형태의 가야금으로 새로이 창작된 레파토리의 연주에 사용하고 있다.


악기 제작에 있어 중요 재료는 금(金), 석(石), 사(絲), 죽(竹), 포(匏), 토(土), 혁(革), 목(木)의 8가지로 이를 8음(八音)이라 부른다.
  • 금(金),은 쇠부치로 만든 악기로 편종(編鐘), 특종(特鐘), 방향(方響), 징(鉦), 나발(喇叭) 등이 있다.

  • 석(石)은 돌로 깎아 만든 악기로 편경(編磬)특경(特磬)이 있으며,

  • 사(絲)는 공명통에 명주실로 꼰 줄을 얹어 만든 악기로 거문고, 가야금, 해금, 아쟁, 비파 등이 있다.

  • 죽(竹)은 대로 만든 악기로는 피리, 젖대, 당적(唐笛), 단소(短簫), 퉁소(洞簫) 등이 있으며,

  • 포(匏)는 바가지의 재료를 쓴 악기로 생황(笙簧) 등이 있으며,

  • 토(土)는 흙으로 구워 만든 악기로 훈(塤), 부(缶)가 있다.

  • 혁(革)은 둥근 통에 가죽을 씌워서 만든 악기로 장고, 갈고, 좌고, 절고, 소고등이 있으며,

  • 목(木)은 나무로 만든 악기로 박(拍), 축, 어 등이 있다.


가야금
가야금에는 정악(正樂)을 연주하는 정악가야금(풍류가야금, 법금)과 산조가야금의 두 종류로 나뉜다.
정악용 가야금은 꾀꼬리 모양이 양의 귀처럼 생겼다 하여 양이두(羊耳頭), 산조용 가야금은 봉황새의 꼬리와 같다고 하여 봉미(鳳尾)라 부르기도 한다. 이 둘은 재료부터 크기와 음색, 조율법 등이 차이가 있다.

  • 정악가야금은 두꺼운 오동나무 통판의 뒷면을 파내어 공명통을 만들고 앞면은 볼록하게, 뒷면은 평평하게 다듬는다. 그러나 산조가야금은 통나무를 쓰지 않고 앞판은 오동나무의 안쪽을 후벼 판뒤에 밤나무 판재를 덧대어 아교로 붙여 공명통을 만드는 점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 크기는 규격화된 서양악기와 달리 연주자의 신체조건에 딸라 약간씩 차이를 두어 제작하는데, 정악 가야금의 경우에는 약 160-170츠 내외에 너비가 30센티미터, 현의 길이가 140센티미터 정도이다. 그러나 산조가야금은 길이가 145-150센티미터이고 너비를 21센티미터, 현의 길이는 120센티미터로 훨씬 작고 가볍다. 따라서 정악가야금이 원조이고, 산조 가야금은 조선말기에 민요를 연주하기 위해 정악가야금을 축소, 변형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 한 대의 가야금이 제작되려면 오랜 시간과 공력을 거쳐 완성된다.
    악기를 만드는 데 가장 공이 들어가는 부분은 나무의 건조라 할 수 있다.
    - 눈과 비를 맞혀 바람에 10년 정도 말리고 난 다음에 판재의 속을 파내고 다듬어 울림통을 만든다.
    - 울림통 안쪽 양 변에 쫄대를 붙여 소리가 양 옆으로 잘 퍼질 수 있도록 한다.
    - 울림통 안면은 벌레가 먹거나 습기가 차지 않도록 옻칠을 해준다.
    - 밑판을 붙이고 울림통이 만들어지면 인두질을 시작하여 문양을 살려낸다.
    - 장미목이나 벚나무로 울림통 머리와 끝 부분에 좌단(완자)과 봉미를 만들어 붙인다.
    - 틀을 갖춘 악기에 옻칠을 한 다음 건조시킨다.
    가야금에 장식을 입히고 안족을 만들어 줄을 거는 일까지의 공력이 완벽한 장인이 수공으로 이루어야 하는 과정이다.
  • 건조과정은 눈비를 맞히는 자연조건에서 수년간 곰삭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는 대형 가마솥에 소금을 넣고 찐 후에 다시 자연건조를 2년이상 시키는 방법을 쓴다.

거문고
  • 거문고의 앞판은 오동나무를 쓰며 돌 틈에서 자란 오동을 으뜸으로 친다. 뒤판은 밤나무를 쓰며, 등판에는 옻칠 또는 도료를 칠하기도 한다.

  • 용구(龍口, 울림통의 머리쪽. 용두)의 재료는 화리(華梨)가 가장 좋고, 산유자, 검은매화 벚나무를 쓴다.

  • 속현침의 재료는 벚나무를 쓰며, 봉미(鳳尾)는 용구와 같으며, 부들 구멍을 뚫고 포도넝쿨 문양의 음양각을 새겨 장식한다.

  • 담괘의 재료는 용구와 같으며 6줄을 걸어 얹어 베개구실을 하는 버팀괘로 양끝마무리는 1mm두께의 쇠뼈를 붙여 장식한다.

  • 안족(雁足)의 재료는 용구와 같으며, 그 모양은 기러기발과 같다고 해서 안족이라고 하며, 줄을 얹어 받치는 기둥이라고하여 주(柱)라고도 한다.

  • 진과의 재료는 안족과 같으며, 조율용 괘(6개)로 목의 구멍에 줄을 밑에서부터 꿰어서 돌려잡아 맨다.

  • 좌단의 재료는 화리이며, 거문고의 얼굴에 해당하는 부분(용두)으로 화려하게 장식한다.

  • 술대받이 재료는 자라 껍질의 대모를 사용했으나, 향피 산저피 우피로 대용하고 있으며 거문고의 목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 운족의 재료는 안족과 같으며, 뒷면 등판의 양가와 봉미 아래 3면에 붙이는 거문고 발이다.

  • 변은 거문고 변두리에 조각나무를 대고 짤 때에는 벗나무(두께 1mm)로 복판과 당판의 마구리를 둘러댄다.

  • 술대는 6줄을 뜯는 도구로, 길이 18~ 20cm 굵기와 지름은 8mm 가량이 좋다고 하며, 재료는 산죽, 해죽, 시누대로 한다.

  • 6줄의 현은 대현이 가장 굵고, 문현 무현 괘상청 괘하청 유현의 순서로 가늘어진다. 재료는 생사(生絲), 즉 누에고치실을 꼬아서 만든다. 현의 발음은 생사의 질과 정비례하므로 생사의 선택이 중요하다.

거문고 소재지 / 경북 영천시 성내동 97-1, 시대 / 미상

효령대군의 10대손인 병와 이형상(1653∼1733)이 제주목사로 있다가 사임하고 돌아올 때, 그의 선정을 높이 산 한 노인이 선물했다는 거문고이다. 그 노인은 오씨란 성만 전해지며, 거문고는 한라산 백록담에서 저절로 말라죽은 박달나무로 만든 것이라 한다. 이 거문고에는 거문고에 관한 서문등이 새겨져 있다. 이 유품들은 그의 귀한 인품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서 가치가 있다.


해금
해금은 일명 계금이라고도 하며, 중국 당 송 이후 속악에 쓰이던 알현 찰주의 악기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우리에 맞게 개조되어 궁중제례악, 연례악, 향악에 연주되어왔다. 재료는 쌍골죽을 쓰며, 주철은 철현을, 주아는 조율의 구실을 하는 것으로 화리가 최상이다.

거문고나 해금을 제작공정하는 악기장은 악기의 어느 한 부분 할 것 없이 모든 정성을 쏟아야 소리도 아름답고 보기에도 아름답다.
따라서 제작기능 뿐 아니라 음에 대한 깊은 이해가 곁들이지 않으면 안되는데에 악기장의 어려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