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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Kwang-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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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선의 역사 바느질법과 용구 복식의 종류


침선이란 원래 바늘과 실이라는 말로서 넓은 의미로 해석할때에는 복식 전반을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실을 꿰어 바느질 하는 일을 총칭하는 뜻이라 할 수 있는데 침선에 대해 보다 더 정확히 정의하자면
첫째 옷을 말아서 재봉질 하는 봉재와,
둘째로 옷에 어울리는 무의를 수놓는 자수,
셋째로 옷을 곁들여 장식하기 위해 만드는 장신구 공예까지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이다.

침선장이란 바늘에 실을 꿰어 옷을 짓거나 꿰매는 침선기술이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침선을 재봉(裁縫)이라고도 한다.

우리 나라의 침선기술은 삼국시대 고분벽화를 통하여 볼 때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의 복식문화는 상하존비의 계급을 나타내었고 이로서 치민을 하였으니 침선은 단순히 의식주 중 의생활을 위한 기술이라는 측면을 벗어나 국가의 기강을 잡는 신분제도를 표현한 한 방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경공장(京工匠)에는 10명의 침선장이 공조(工曹)에 소속되었고, 외공장(外工匠)은 2개소에 64명이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옷을 제작하는 데에는 바느질 기술은 물론 제사장, 청염장, 홍염장, 직조장, 능라장, 도련장, 지작장, 금박장, 자수장등의 협업에 의해 완성되나 옷의 맵시, 품위, 효용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이가 침선장이다.

궁중에서도 왕실 복식을 전담하던 상의원(尙衣院)에 경공장 가운데 8명을 분속시켜 각종 궁중복식을 제작하도록 하였고, 부족한 일손은 기녀(妓女)의 신분인 침선비(針線婢)가 거들도록 하였다.



바느질의 방법
침선에는 손바느질과 재봉틀바느질이 있다.
19세기 말엽 서양문명의 영향을 받기 이전까지는 손바느질을 해 왔는데,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독특한 바느질법이 발달되었다. 그 기초적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홈질: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널리 쓰인다. 헝겊을 겹쳐서 땀을 곱결지 않고 성기게 꿰매는 방법으로, 바늘땀이 고르고 사이의 간격도 바늘땀과 같이 일정하게 되어야 한다. 곱게 하는 홈질은 0.2cm 정도 땀 간격으로 하고 성글게는 0.3∼0.5cm 땀으로도 한다.
(2) 박음질: 솔기를 튼튼하게 할 때 쓰인다. 한 땀을 뜨고 난 다음 그 바늘땀 전부를 되돌아가서 다시 뜬다. 반박음질은 반당침이라고도 하며 바깥으로 나오는 땀을 반만 나오도록 하고, 안쪽으로는 박음질과 같이 실이 겹쳐져서 박음질만큼 튼튼하지는 못해도 홈질보다는 견고하다.
(3) 감침질: 감침질에는 2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안쪽에서 감칠 때 바늘을 곧게 세워 뜨고 대신 실밥이 어슷하게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며, 또 한 방법은 겉에서 감칠 때 실밥이 작게 나오게 하기 위해 바늘을 어슷하게 꽂아 뜬다. 버선 감칠 때 이 방법을 쓴다.
(4) 공그르기: 단을 접고 단 안쪽으로 스며 뜨고 겉은 한 올씩 뜨는 방법과 창구멍 등을 마무리할 때 표리에 모두 바늘질땀이 작게 보이도록 뜬다.
(5) 상침뜨기: 솔기를 장식하거나 탄탄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바늘땀 수에 따라 한땀상침, 두땀상침이라 한다. 세땀을 곱게 박고 세땀 간격을 띄우고 다시 세땀을 박는 것을 세땀상침 이라 한다.
(6) 시침질: 옷의 바느질이 끝난 뒤에 밀려나오지 않도록 찡겨놓는 방법이다. 솜둔 옷은 시침해야 하고 겹옷도 솔기를 뜬다든지 할 때 시침을 한다.
(7) 밀어 감치기: 옷감 끝을 밀어서 감치는 방법으로, 오른손으로 감쳐 나가는데, 가늘고 매끈하게 감쳐서 매우 섬세하고 곱게된다.
(8) 사뜨기: 골무나 노리개 등 양끝이 마무리된 것을 합칠 때 쓰인다.
(9) 휘갑치기: 옷감의 올이 풀리지 않도록 하는 방법으로 대개 1cm 간격에 0.5∼1cm 깊이로 한 땀 또는 5∼6땀씩 휘갑쳐 가는 방법이다.
(10) 솔기하기: 솔기하기에는 통솔, 가름솔, 곱솔, 쌈솔 등이 있다. 통솔은 뒤옹솔이라고도 하는데 올이 잘 풀리는 옷감에 쓰이며, 가름솔은 안에서 한 번 박아서 그 시접을 갈라놓는 방법이며, 곱솔은 솔기 하나를 세 번 박아서 마무르는 방법이고, 쌈솔은 솔기를 납작하고 튼튼하게 하는 방법으로, 속옷에 쓰인다.

기본용구
옷감, 바늘ㆍ실ㆍ자ㆍ가위ㆍ인두ㆍ인두판ㆍ화로ㆍ다리미ㆍ실패ㆍ골무ㆍ실첩ㆍ바늘꽂이와 바늘집ㆍ반짇고리가 필요하다.
우리 옷은 세부적인 평면선과 곡선의 미를 돋보이게 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복식이 서구화됨에 따라 가정에서 계승되어 점차 침체되어 가는 우리의 전통 침선기술의 보전과 전승을 위해 침선장은 더욱 보호ㆍ육성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삼회장저고리 / 조선시대(朝鮮時代)
조선시대에 시작된 저고리 형식으로서 노랑이나 연두 바탕에 자줏빛 천으로 깃, 끝동, 고름을 달고, 저고리 겨드랑이에 자줏빛 곁마기를 댄다. 또는 남끝동에 자줏깃, 자주고름, 자주곁마기를 다는 경우도 있다. 곁마기가 없는 것을 반회장저고리라 한다.

 
반회장저고리
영왕비송화색반회장저고리(英王妃松花色半回裝저고리)
20~40대까지 입을 수 있는 젊은 층의 옷으로 남편이 있는 경우에만 입을 수 있다. 남끝동, 자주깃, 자주고름을 반회장이라 하는데, 약식으로 남끝동에 자주고름만을 다는 경우도 있고 끝동, 고름을 자줏빛 일색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 우리나라와 저고리
“여인의 저고리에서부터 전통은 지켜져야 한다.”
결혼하기전 규수가 있는 황(黃), 녹(綠), 삼회장저고리(三回裝赤古里)를 입고 결혼한 새댁은 삼회장(三回裝), 또는 반회장을 입었는데 아이들 셋, 넷 낳은 나이로는 삼회장을 입는 것이 맞지는 않으나 양부모님이 구존해 계실때에는 행복함과 부모님 앞에서 응석하는 심정으로 삼회장 또는 반회장을 입을 수 있다.
당파가 심했던 시절에는 서로 닮지 않으려고 하였으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노론(老論)은 저고리(赤古里)도 약간 넉넉하며 깃은 넓으면서 목판 당코깃에 고름도 짧고 납작하게 한치정도 하였도 소론(小論)은 소매가 약간 좁으면서 화장도 넉넉하고 깃은 굴린 당코깃으로 하면서 고름은 팔푼을 넘어서는 안되는 것으로 엄격히 지켜졌다.
저고리(赤古里)는 완성하는 데에는 목판깃, 칼깃, 당코, 조개도련, 곁막이의 화, 목적, 행선을 엄격히 지키면서 완성시켜야만 하였다.
우리나라와 같이 계절에 민감한 깊은 겨울에는 두툼한 솜 저고리(赤古里), 소재로는 단종류가 즐겨 쓰였다. 겨울에서 봄으로 들어설때는 차렵저고리, 만물이 소생하는 에는 진솔옥약목 상침박이 저고리를 입으며 늦은 봄에 남자들은 마냥 호사하게 쪽물 염색하여 다듬이한 모시두루마기를 차려입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는 물겹저고리로 소재는 숙사 종류로 하고, 하지를 맞이하게 되면 깨끼 저고리, 모시적삼, 집안에서는 모시 또는 베 적삼 등 계절에 맞게 깨끼저고리를 하는데 소재는 생사를 하였고 적삼은 천연섬유를 적재적소에 알맞게 하였다.

 
당의(唐衣) / 조선(朝鮮時代)
조선시대 妃, 비빈, 상궁, 사대부가의 부인들이 저고리 위에 입는 예복으로 형태는 길이가 길고 양옆은 겨드랑이 아래부터 트인 옷이다. 이 당의는 초록에서 푸른색이 많이 나는 도류불수단(桃榴佛手緞)을 겉감으로 하고 안은 붉은색 단이다. 깃은 겉감과 같은 감으로 당코깃이다. 옷고름은 자주색에 수복자와 꽃무늬를 금박했다. 소매 끝에 거들지가 달려있고 옷길에는 금박을 했는데, 어깨부분에는 수(壽), 복(福)자와 길상무늬 , 몸판에는 희(囍)자와 박쥐무늬, 앞, 뒷, 길아지부분은 수(壽), 복(福)자와 꽃무늬, 용무늬를 금박했다. 대원군의 큰 자부(子婦)인 노공비의 유품이다.


원삼(圓衫)
자적원삼(紫赤圓衫) / 광복이후(光復以後)
원삼은 여자의 대례복(大禮服)으로, 신분에 따라 색과 문양을 달리하였다. 황후는 황금색 길에 뒤가 길고 앞이 짧으며, 소매가 넓으면서 끝에는 다홍색과 남색의 색동과 흰색 한삼(汗衫)이 달린, 용문(龍紋) 직금(織金)이나 부금(付金)으로 된 황원삼이며, 왕비는 다홍색 길에 황색과 다홍색 또는 남색의 색끝동에 한삼이 달린, 봉문(鳳紋) 금박을 박은 홍원삼이고, 빈궁(世子嬪 또는 왕의 후궁)은 자적색(紫赤色) 길에 황색과 다홍색의 색끝동에 한삼이 달린, 봉문 금박을 박은 자적원삼이며, 공주?옹주는 연두색 길에 다홍색과 노란색 색끝동과 한삼이 달린, 화문(花紋) 금박을 박은 초록원삼이었다.

 
도포(道袍) / 조선(朝鮮時代)
재질 : 사직(絲織) / 마(麻)
조선중기 이후 사대부들이 평상시에 착용하던 포(袍)의 한가지로 길복(吉服)으로는 청색, 상복(常服)으로는 백색을 입는다. 도포는 직령에 두리소매이며 무가 달려 있고 뒷자락에 전삼(展衫)이 달리고 전삼밑은 뒷중심선이 트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개화기 이후 다른 넓은 소매의 포와 함께 사라지고 양반층의 제사에나 일부 착용된다.
홑으로 짓고 단으로 처리하며 마무리한다. 흰색이나 옥색을 많이 사용한다. 견사, 명주, 무명, 모시, 강포, 안동포 등 소재가 다양하다.

 
관복(官復) / 조선(朝鮮時代)
관복은 관리의 집무복으로 계급표시는 흉배(胸背)로 구분하고 띠로도 구분하였다. 머리에는 사모(紗帽)를 쓰고 발에는 목화(木靴)를 신는다. 이 관복의 깃은 정어슨 올로 처리한 단령으로 목둘레가 구김없이 편안한 것이 바느질이 잘 된 것이다. 흉배는 쌍호(雙虎)로써 무관 당상관에 해당된다. 안감은 큼직한 쌍용운(雙龍雲)대접문이 있는 남색사이다.
컽감은 자색이나 장색이고 안감은 홍색이며 동정은 흰색이다.마르는 순서는 뒷길-앞길-홍대소매- 무-겉섶-안섶-깃-고름 순이다.